해양문화의 명장면 <45> 흑해, 러시아의 해양 진출 스토리 | |||
작성일 | 2019-07-05 | 조회수 | 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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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박원용 교수(사학과)는 26일 국제신문 21면에 실린 이 글에서 “흑해는 북쪽으로는 케르치해협에서 아조프해, 남서쪽으로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마르마라해로 이어지고 다시 다르다넬스해협에서 지중해로 연결되는 지정학적 위치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면서, “흑해의 이런 지정학적 중요성을 활용해 러시아가 유럽 강대국으로 부상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크림 전쟁(1853~1856년).”이라고 소개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미 17세기부터 흑해로 나아가는 통로라 할 수 있는 아조프해를 차지하기 위해 이 지역의 전통적 강자 오스만투르크와 전쟁을 벌여왔다. 그는 “러시아 여제 예카테리나는 총애하던 그리고리 포?킨에게 1783년, 크리미아반도 세바스토플에 흑해 함대 창설을 명령하여 해양 강국 면모를 다질 초석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크림전쟁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박 교수는 “19세기 중반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한때의 영광을 뒤로하고 ‘유럽의 병자’로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였다.”면서,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열강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와해로 인한 과실을 어느 한 국가가 독점함으로써 유럽의 세력 균형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스만투르크와 전면전에 돌입한 이상 러시아는 우선 흑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더 넓은 해양공간으로 진출할 여건을 마련하고 싶었다.”면서, “러시아는 1853년 11월 흑해 남쪽 시노프항의 공략을 위해 흑해함대를 이동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러시아가 보스포루스해협과 이스탄불 장악에도 나설 수 있다는 우려를 유럽 열강들은 지울 수 없었다.”고 말하고, “1854년 3월,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의 유럽연합군이 오스만투르크 지원에 나서면서 크림 전쟁은 국제전으로 비화했다.”고 밝혔다. 그는 “몇 주안에 종결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1개월이나 진행된 세바스토플 공략은 러시아와 유럽연합군 모두에게 엄청난 희생을 초래했다.”면서, “11개월 공방 끝에 세바스토플이 함락되고 오스트리아, 프로이센까지 유럽연합군에 가담하겠다고 위협하자 러시아는 더는 전쟁을 끌고 갈 수 없었다.”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흑해를 장악해 지중해까지 진출하려는 러시아의 의도는 좌절됐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는 크림 자치공화국 주민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명분으로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귀속했다. 크림 전쟁의 역사적 경험을 상기할 때, 러시아의 이런 조치가 21세기 해양강국으로 부상을 의도하는 예비적 작업으로 후대의 역사가 평가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고 글을 맺었다. 한편 지난 1월 3일 프롤로그로 시작된 <해양문화의 명장면> 시리즈는 이날 45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바다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기획이었다. 그러나 끝나지 않았다. 바다를 둘러싼 열강들의 패권다툼과 바다를 기대어 삶을 이어온 인간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부경투데이>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1226.22021010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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