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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44> 고려대장경 바다를 건너다
작성일 2019-07-05 조회수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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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우 교수의 글이 게재된 국제신문 지면.
 
부경대학교 사학과?국제신문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 44회는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간 고려대장경 이야기였다.

부경대 이근우 교수(사학과)는 이 글에서 경판 제작기술이 뒤쳐졌던 일본은 무려 65차례에 걸쳐 대장경을 줄 것을 조선에 요구했고, 심지어 우리의 대장경 경판을 약탈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대장경은 모든 불교경전의 집대성을 뜻하며 일체경(一切經)이라고도 한다.”면서, “고려가 1011년 제작에 착수한 초조대장경이 착수 시점으로 보면, 역사상 두 번째 대장경에 해당한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일본은 대장경의 인쇄본을 얻으려 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다. 심지어 팔만대장경 경판 자체를 요구했다.”고 했다.

그는 “승려 신분이던 (일본의) 실정막부의 4대 장군 족리의지는 팔만대장경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조선으로서는 유일한 대장경의 판목이므로 그 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무력을 행사해서 대장경판을 빼앗자’는 계략을 꾸미려하기도 했다는 것.

이 교수는 “일본이 대장경을 요구한 것은 65회에 이르고, 이에 따라서 많게는 44장(藏) 즉 팔만대장경 전부가 44차례에 걸쳐 일본에 전래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일본은 왜 그렇게 조선의 대장경을 갖고 싶어 했을까?

이 교수는 “무엇보다 당시 일본은 대장경을 만들지 못했다.”면서, “대장경이 출현한 10세기 이후 일본은 700년간 스스로 대장경판을 만들지 못했기에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에 와서 대장경을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팔만대장경은 송과 거란이 제작한 대장경의 내용을 교정한 것으로 그 우수성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점도 일본의 요청 배경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고려의 대장경을 실로 방대한 분량이었으며, 대장경은 일본 불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부경투데이>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1219.22021007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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