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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30> 황해에서 요동친 조선과 청나라
작성일 2019-07-05 조회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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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현 교수의 글이 게재된 국제신문 지면.

부경대학교 조세현 교수(사학과)는 22일 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 30회 ‘황해에서 요동친 조선과 청나라’를 게재했다.

그 때 황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조 교수는 “1882년 8월 26일 딩루창(丁汝昌)이 이끄는 청나라 군대는 한성에 진입해 군란의 책임을 물어 대원군을 구금했다. (중략) 이들은 대원군을 곧바로 등영주(登瀛洲)호에 태워 텐진으로 압송했다.”면서, “한두 줄로 요약한 임오군란 당시 대원군 납치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 속에는 2000년 한·중관계사의 극적인 변화가 숨겨져 있다.”고 밝혔다.

그는 “주목할 대목은 임오군란 때 어떻게 3000여 명의 청군이 조선에 신속하게 왔을까 하는 점.”면서, “그들은 육로가 아닌 청나라 북양수사(北洋水師)의 군함과 민간용 윤선을 타고 황해를 건너 마산포로 들어왔다.”고 소개했다.

조 교수는 “옛날에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려면 육로를 통해 몇 개월이 걸렸다. 비록 해로가 있었지만, 너무 위험해 기피했다. 범선이 아닌 윤선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중 간 교통로에서 증기선의 출현은 전신망과 더불어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고 밝혔다.

그는 “청의 시각에서 보면, 임오군란은 (청나라 해군) 북양수사가 처음 실행한 대외군사작전으로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 사건은 조·청 관계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조선에 대한 (청의) 군사전략을 육군에서 해군으로 전환”을 의미했다.

조 교수는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해군 행동에 반발하며) 북양수사는 새로 구입한 철갑선 정원(定遠)과 진원(鎭遠)을 중심으로 함대를 부산과 원산 일대로 출동시켰다.”면서, “문제는 북양함대가 선박을 수리하고 연료를 공급받는다는 이유로 일본 나가사키에 기항하면서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북양함대가 능력을 과시할 요량으로 일본 지도층을 초대해 선상 파티를 연 점이다. 청의 첨단 해군력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자 일본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 후 해군력 강화를 최고 목표로 삼아 경쟁적으로 군사력 증강에 나선다.”고 밝혔다.    
 
북양수사가 황해 제해권을 장악하면서 일어난 급격한 변화는 어떤 일을 초래했을까?

조 교수는 “(이는) 일본 해군력의 팽창을 가져와 얼마 뒤 청일전쟁이라는 엄청난 사건의 불씨가 되었다.”면서, “끊임없는 군사력 경쟁이 결국 서로의 안전이 아닌 파멸로 이끈 불길한 경험.”이라고 말했다.<부경투데이>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822.22018008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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