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의 명장면 <27> 바야돌리드 논쟁-해양공간을 통해 접촉한 ‘타자’ | |||
작성일 | 2019-07-05 | 조회수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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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타자’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가? 이를테면 최근 이슈로 등장한 예멘 난민 같은 다문화사회에서 살아가는, 살아가야할 ‘타자’에 대한 인식 말이다. 부경대학교 박원용 교수(사학과)가 18일 국제신문 18면에서 ‘타자에 대한 이해’라는 의미 있는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이날 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 27회 ‘바야돌리드 논쟁 ? 해양공간을 통해 접촉한 타자’라는 글에서였다. 박 교수는 이 글에서 ‘바야돌리드 논쟁’이라는 해양문화의 명장면 하나를 소개한다. 이는 1550년 에스파냐(스페인)의 도시 바야돌리드에서 열린 토론을 말한다. 박 교수는 “바야돌리드에 모인 성직자와 신학자들은 에스파냐의 식민지 확대 과정에서 접한 아메리카 원주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했다. 이 토론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권리와 정체성을 둘러싼 에스파냐 식민주의자들의 대립적 관점’을 가진 두 사람(세풀베다와 라스카사스)이 맞붙은 토론이었다고 한다. 세풀베다의 주장은 이랬다. 박 교수에 따르면, 세풀베다는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전쟁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원주민은 천성적으로 미개하여 이성으로는 설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덕과 사리 분별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미개인’에게 우월한 문화를 강제로 부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세풀베다의 신념이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세풀베다의 주장은) 원주민에게 육체적 봉사보다 나은 것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그들은 태생적 노예와 다를 바 없으며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좋다는 주장이었다.”고 했다. 반면 라스카사스의 주장은 이와 반대였다. 박 교수에 따르면, 라스카사스는 모든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키케로의 관점을 따라 아메리카 원주민의 본질 역시 에스파냐인과 같으므로 그들이 태생적 노예일 수 없다고 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잉카 문명이나 마야 문명의 존재에서 확인할 수 있듯 나름의 문자, 법, 종교 등을 갖추고 통치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유럽인 시각에서 야만으로 비치는 인신공희 같은 행위는 그들 나름의 종교에 충실한 자연스러운 행위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 라스카사스의 주장이었다.”고 말했다. 세풀베다와 같이 전쟁도 불사하는 무력에 의한 원주민 개종보다 그들의 문화와 신앙을 존중하는 선교가 올바른 방식이었다는 것. 결국 라스카사스 쪽의 승리였다. 박 교수는 “바야돌리드 논쟁은 원주민 개개인에 대한 식민주의자들의 태도를 실질적으로 바꾸는 데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엔코미엔다의 착취체계에 내재한 정복의 만용을 어느 정도 약화시켰다.”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일방적 착취가 지속됐다면 에스파냐령 아메리카 제국의 수명은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을 맺으면서 그는 “예멘 난민 문제를 놓고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적지 않다. 에스파냐 같은 해상제국의 수립 과정에서 등장한 바야돌리드 논쟁 또한 ‘타자’가 늘어가는 한국사회의 현시점에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면서, “‘타자’와의 역사문화적 차이에 대한 인식, 그들에 대한 편견의 제거 없이 다문화사회 정착이라는 구호는 공허한 외침으로 그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부경투데이>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718.22018005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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