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의 명장면 <26> 바다 멀리 보석의 나라가 있다-유구국(琉球國) | |||
작성일 | 2019-07-05 | 조회수 | 4 |
---|---|---|---|
첨부파일 | |||
그 옛날 일본 남단에 위치한 섬나라 오키나와(당시 유구국)는 당시 우리와 어떤 인연을 맺었을까? 부경대학교 이근우 교수(사학과)는 11일 국제신문에 실린 글에서 부경대·국제신문 공동기획 시리즈 <해양문화의 명장면> 26번째 명장면으로 오키나와와 우리의 연에 대한 장면을 보여준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태조 원년(1392) 조선에 온 유구국 사신은 조회에 참여했다. 이 해, 유구국의 중산왕 찰도가 왜구에 사로잡혔던 조선인 남녀 8명을 송환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태종 9년(1409년), 중산왕 사소(思紹)가 사신을 보내 후추와 상아, 모직물·견직물을 염색하는 데 꼭 필요한 백반(白礬), 약재로도 쓰고 붉은색 염료로도 쓰는 소목(蘇木) 등을 바쳤다. 설탕, 물소 뿔, 침향(沈香), 장뇌(樟腦) 등을 보내기도 했다.”면서, “조선에서 나지 않는 남방의 물산을 실어오는 유구국은 그야말로 보석과 같은 나라였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유구국(상씨 왕조)은 1406년 건국돼 1879년(일본 명치 12년)에 일본에 합병됐다. 인구 20만이 되지 않는 작은 왕국이었지만, 당시 조선을 비롯해 명·청, 일본이 모두 바다를 통한 왕래와 교역을 제한하는 가운데, 유구국은 이들 여러 나라 모두와 교역하였다.”면서, “지리적 이점을 살려 특히 동남아시아 물산을 중계 무역함으로써 많은 이익을 거두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구국이 왜구에게 잡혀갔던 조선 사람들을 돌려보내자, 조선 조정에서는 직접 유구국에 사신을 보내 조선 사람들을 데리고 오자는 논의가 일어났다. 드디어 태종 16년(1416년) 이예(李藝)라는 인물을 통신관(通信官)으로 파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6개월 만에 이예는 왜구에게 붙잡혀 유구국에 팔려간 조선 사람 44명을 데리고 돌아왔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조선 초기에 조선과 빈번하게 통교하던 유구국을 그린 지도 한 장이 조선이 만든 ‘해동제국기’(1471년 간행)에 남아 있다. 이 지도는 유구국 전 지역을 상세하게 나타낸 세계 최초 지도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해동제국기’의 유구국 지도에는 북규슈의 상송포를 기점으로 중간 기착지와 유구국 수도인 수리성에 이르는 거리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고 한다. 섬 이름뿐 아니라, 사람이 산다든가, 유구에 속한다는 등의 설명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해동제국기’ 말미에는 당시 유구국 언어에 대한 정보도 실렸고, 이는 유구어(琉球語)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높이 평가된다.”면서, “조선은 ‘해동제국기’라는 책 속에 당시까지 축적한 동아시아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과 정보를 고스란히 응축해 놓았다.”고 강조했다. <부경투데이>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711.22021004444 |
다음 | 해양문화의 명장면 <27> 바야돌리드 논쟁-해양공간을 통해 접촉한 ‘타자’ |
---|---|
이전 | 해양문화의 명장면 <25> 초량왜관 스캔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