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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25> 초량왜관 스캔들
작성일 2019-07-05 조회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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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화진 교수의 기사가 실린 국제신문 지면.

7월 4일 국제신문 22면에 실린 부경대학교 사학과·국제신문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의 25번째 이야기는 1690년에 일어난 초량왜관 스캔들이었다.

필자는 부경대 박화진 교수(사학과)였고, 제목은 ‘남성만 거주 허락된 왜관, 조선 여인과 금지된 만남에 朝·日간 외교전 최전방 되다’였다.

박 교수는 “한·일 양국 간의 활발했던 해양교류 양상을 잘 드러내 주는 것으로 우리는 왜관의 존재를 들 수 있다.”면서, ‘외국 땅에 있었던 유일한 일본인 도시’인 초량왜관에서 일어난 스캔들을 역사 속에서 꺼냈다.

초량왜관에서는 과연 어떤 스캔들이 일어났을까?

박 교수에 따르면, 이 스캔들은 ‘교간(交奸·조선 후기 일본 남성과 조선 여성 사이의 성관계 사건)’을 말한다.

박 교수는 “초량왜관에는 여성이나 가족이 거주하지 않고 400~500명의 일본인 남성만 거주했다.”면서, “임진왜란 이후 일본인의 한양 상경을 금지하여 일본에서 온 사절단 및 상인도 모두 부산포에 설치된 왜관 내에 머물도록 하며 남성만 도래하도록 규제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그리하여 왜관 거주 일본인들이 채소·생선·과일 같은 일용 생필품을 사는 새벽시장(매일 아침 왜관 정문 밖에 열린 시장)의 경우, 젊은 여자 상인이 파는 물건은 품질과 관련 없이 매우 인기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조선 정부는 왜관 거주 일본인과 동래부의 부산포·초량촌 주민의 교류를 매우 싫어해 돌담이나 설문·복병막(伏兵幕)등을 설치하고 왜관 출입을 통제했다.”면서, “만약 일본인과 조선 여성이 성적으로 접촉했을 경우 조선인 관련자는 유배 또는 효시(梟示: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는 뜻으로 죄인의 목을 베어 나무에 매달아 뭇사람에게 보임) 형에 처하고 관련 일본인들도 동률 형벌에 처할 것을 엄히 요구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의 글에 따르면, 조선 후기 한일 양국 문헌에 나타나는 왜관 교간사건은 11차례(1661~1859년)라고 한다.

그는 “1690년 2월 하순 초량왜관에 거주하는 이테 쇼자에몬·이베에(伊兵衛)·한우에몬(半右衛門) 등이 부산의 이진수(李進壽, 사찰에 딸린 종)·권상(權祥)·서부상(徐富祥)과 결탁하여 조선인 여자 분이(좌수영 사령 이명원의 딸)·천월(賤月, 이명원의 누이)·애금(愛今, 사노비)과 간음한 사건이 터졌다.”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체포된 분이·천월은, 후일 애금·권상·서부상 등과 함께 효시형에 처해지고, 왜관의 일본인 남성 4명은 쓰시마 추방·조선 도해 금지령이라는 비교적 경미한 처벌에 처해져 교간사건에 대한 양국의 입장이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당시) 동래부 휘하 군관들이 분이와 천월을 체포하기 위해 바로 왜관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왜관 주위에 경비·감시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치외법권적 공간 개념이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왜관은 복잡한 외교사건 해결을 위해 비선(飛船,나는 듯이 빠르게 가는 배)을 여러 차례 쓰시마로 파견한다.”면서, “이와 같이 외교적인 제반 문제 처리와 무역교류를 위해 빈번한 선박 왕래를 통한 해양 교류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부경투데이>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704.22022000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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