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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17> 영남해로, 민족사와 함께한 경상도 바닷길
작성일 2019-07-05 조회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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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호 교수의 글이 게재된 국제신문 지면.

부경대학교 신명호 교수(사학과)는 9일 “북한으로 가는 바닷길이 올바르게 열리는 날, 미래도 크게 열릴 것이다.”고 말했다.

이날 그는 부경대 사학과와 국제신문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 17회째 명장면 ‘영남해로, 민족사와 함께한 경상도 바닷길’이라는 글에서 그렇게 말했다.

‘북한으로 가는 바닷길’이라는 말은 얼마나 밝은 희망을 가득 품고 있는 말인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와 설렘을 안겨주는 말인지.

신 교수는 이 글에서 “길을 통해, 고립적으로 정착해 있던 사람들은 연결·통합된다. 정보통신기술이 미약했던 전통시대에는 길이 정보통신망 역할까지 했다.”면서, “그래서 길이 발달하면 유동적·유목적 문화가 발달한다. 그 결과 민생이 번성하고 국가가 태평해지면 길이 올바른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남해로는 작게는 영남 지역 해양문화의 대동맥, 크게는 우리나라 해양문화의 대동맥이다. 영남 앞바다에 미로처럼 형성된 영남해로에는 주변 어촌과 포구에서 끊임없이 사람과 물자, 정보가 유입됐다. 바다 건너 일본, 유구, 중국에서 그리고 경상도 낙동강과 태화강 등 내륙 하천에서도 흘러들었다. 유입된 사람·물자·정보는 다시 영남해로를 통해 주변 어촌, 포구, 경상도 내륙 그리고 수도 한양과 바다 건너 외국까지 유통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우리 민족의 활동 영역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한반도와 만주는 물론 일본열도, 중국 대륙, 저 멀리 동남아와 아랍 세계까지 우리 민족의 활동영역이었다. 그 광대한 영역을 우리 조상은 땅길 또는 바닷길로 누비고 다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른바 육상 실크로드와 해양 실크로드가 그것이다. 당시 경주는 해양 실크로드의 동쪽 종착지였고, 영남 해로는 경주와 해양 실크로드를 연결하는 핵심 바닷길이었다. 한반도 바닷길과 동북아 해양 실크로드를 연결하던 중심 바닷길이 영남해로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번창하던 영남해로는 조선시대로 오면서 왜 위축되었을까?

신 교수는 그 첫 번째 이유로 “명나라의 해금(海禁) 정책이었다.”고 말했다. 혹심한 왜구를 겪은 명나라는 바닷길을 폐쇄했다는 것.

그는 “공인된 몇몇 사람과 배만 폐쇄된 바닷길을 쓸 수 있었다. 해금과 더불어 세계로 뻗어있던 해양 실크로드도 폐쇄됐고, 영남해로도 더불어 쇠퇴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무역국가로 탈바꿈했다. 영남해로 역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갔다.”면서, “하지만 아직 뚫리지 않은 바닷길이 있다. 북한으로 가는 바닷길이다. 그 길이 올바르게 열리는 날, 영남해로도 크게 열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도 크게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부경투데이>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509.22022014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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