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의 명장면 <14> ‘해동제국기’ 속 기묘한 지도 한 장 | |||
작성일 | 2019-07-05 | 조회수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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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사학과와 국제신문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 14번째 이야기다. 이 교수는 “일본조차도 170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마도의 구체적인 모습과 지명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1471년 이미 조선은 대마도의 모든 포구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 지도가) 원래 대마도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 이 지도는 남북으로 길쭉한 섬을 마치 동그랗게 말아놓은 것처럼 그려놓았다.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다. 왜 이런 이상한 지도를 그렸을까?”하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교수는 “해답은 바다 위에 그려진 흰 선에서 찾을 수 있다. 흰 선은 항로를 뜻한다.”고 밝혔다. 그는 “흰 선은 대마도 한가운데 그려진 만(灣)을 통과해 ‘훈라곶(訓羅串)’이라 쓰인 곳에 이르러서는 다시 반대편인 오른쪽 위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 글에 따르면, 훈라곶은 ‘후나코시(船越·선월)’라는 일본어 음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후나코시’는 배를 넘긴다는 뜻이며, 육지로 배를 끌어 올려 반대편으로 넘길 수 있는 장소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 교수는 “거친 바다를 100km 이상 우회하는 것보다, 육지로 배를 끌어서 넘기는 편이 훨씬 편했던 것이다. 또한 쫓기는 상황에서 이곳에 이르러 배를 반대편으로 넘기면 손쉽게 추적을 따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면서, “대마도 지도를 제작한 사람은 이곳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실제로 기해동정(1419년 세종 1년 조선의 대마도 정벌) 때 이종무 장군이 이끈 정벌군은 … 병선 227척, 병사 1만7000여 명을 동원한 대규모 정벌을 단행하는데, 대마도 형세를 보여주는 지도 한 장 없이 바다를 건넜을 리가 없다.”면서, “대마도 지도의 전체 윤곽은 크게 왜곡됐지만, 정벌군이 공격해야 할 아소만 내부를 크고 자세히 나타내는 데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 이 지도를 그린 이는 누구일까? 이와 관련, 이 교수는 그 주인공을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이예(1373년~1445년)”라고 말한다. 그는 “(이예는) 40여 차례 대마도와 일본을 왕래했다. 그야말로 대마도와 일본에 관한 한 당대 최고 전문가였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탁월한 정보력에 힘입어 조선은 1443년 대마도와 계해약조를 체결했고, 1350년 이래 끊임없이 이어진 왜구의 활동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모두 조선이 왜구의 근거지에 대한 정밀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묘한 지도 한 장은 조선이 획득한 대마도 정보의 결정체이다.”고 밝혔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411.22022003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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