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의 명장면 8] 조선은 왜 대마도를 정벌했나?-황해를 휩쓴 왜구 | |||
작성일 | 2018-03-21 | 조회수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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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여 년 전, 1419년 5월 4일부터 2개월 사이 우리나라 서해에 왜구가 5번이나 출몰하여 약탈을 일삼았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부경대학교 사학과 이근우 교수가 600여년이 흐른 지금, 그때 그 전투/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지난 21일 국제신문 22면에 실린, 사학과와 국제신문 공동기획 시리즈 <해양문화의 명장면> 8번째 필자가 이 교수였다. 제목은 ‘조선을 왜 대마도를 정벌했나? - 황해를 휩쓴 왜구’. 그 2개월 사이에 일어난 왜구의 5건의 약탈 사건은 이렇다. 1. 충청도 비인현 도두음곶 마량포(5.4.새벽) → 2. 충청도 비인현(5.4. 오전) → 3. 황해도 해주(5.11) → 4. 백령도 해상(5.17) → 5. 충남 태안군 안흥량(7.4) 이 교수에 따르면, 왜구들은 그해 5월 4일 새벽 야음을 틈타 기습, 조선 병선을 에워싸서 불살라 7척이 불타고 병사 37명이 전사했다(마량포). 이 교수는 “왜구들은 그길로 동쪽으로 바다를 가로질러 비인현 중심지로 향했다. 왜구들은 겹겹이 성을 에워쌌고, 전투는 아침 8시께부터 낮 12시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성은 함락될 지경에 이르렀고, 이미 성 바깥도 철저하게 약탈당했다.”고 밝혔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 왜구들은 6일 후인 5월 11일 다시 황해도 해주에 나타나 식량을 내놓으라고 협박해 조선 병선은 싣고 있던 쌀을 다 털렸다고 한다. 이 교수는 “5월 17일에는 백령도 해상에서 조선 수군이 왜선 2척과 교전하여 왜구 21명을 죽이고 21명을 사로잡았다.”고 밝혔다. 7월 4일 지금의 태안군 안흥량에서 왜선 2척이 전라도의 공물을 실은 배 9척을 털어 달아났다고 한다. 이 왜구의 노략질로 국민들은 얼마나 공포와 분노에 떨었을까? 이 교수는 “한나절 전투 때문에 아들은 자결하고 아비는 목이 잘렸다. 어떤 수군은 불길과 연기가 자욱한 바다에 빠져 죽었고, 어떤 이들은 요동반도로 대마도로 끌려 다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왜구가 백령도 전투 한 달 뒤 쯤 명나라 망해와를 진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명나라 장수 유강의 계략으로 크게 졌다. 이 교수는 “(이 때) 죽은 왜구가 742명, 사로잡힌 왜구가 857명이었다고 한다. 이후 200여 년간 왜구가 요동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우리도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 없다. 두 달 사이 다섯 번이라니! 그는 “이 사건은 상왕 태종이 대마도 정벌을 단행한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다.”면서, “조선 최초의 해외 원정(遠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밝혔다.<부경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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