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경대학교 | 사학과
커뮤니티
사학과 소식

커뮤니티

사학과 소식

작성자,작성일,첨부파일,조회수로 작성된 표
[해양문화의 명장면 6편] 북양해군의 전설, 정원호와 진원호
작성일 2018-02-13 조회수 2
첨부파일



△ 한 학생이 국제신문에 게재된 조세현 교수의 기사를 읽고 있다. ⓒ사진 이성재(홍보팀)          

 

7일 국제신문에 실린 부경대학교 조세현 교수(사학과)의 글은, 직설적으로 그러진 않았지만, 우리는 바다 영토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진중하게 묻고 있었다.

조 교수의 글은 이날 국제신문 22면 전면에 실린, 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공동기획 시리즈 ‘해양문화의 명장면’의 여섯 번째 글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중국의 전설적인 군함 2척을 소개한다. 당시 아시아를 통틀어 가장 거대한 독일제 철갑선으로 불린 정원호와 진원호였다.
 
조 교수는 “1874년 일본이 대만 섬을 침공한 대만사건이 일어났다. 청조 내부에서 대규모 해양방어(海防)논쟁이 있었는데, 이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리홍장이다. 그는 직례총독과 북양대신을 겸임하면서 북양수사(1875년)를 만들었고, 훗날 근대적 함대인 북양해군(1888년)을 창설했다.”고 소개했다.

조 교수는 “제1, 2차 아편전쟁에서 중국인들은 영국 함선 한 척 제대로 침몰시키지 못한 채 일방적인 패배를 맞보았다.”면서, “그들은 여전히 서양 오랑캐에게 뒤처지는 것은 중국문화가 아니라고 믿었다. 단지 ‘견선리포(堅船利포, 견고한 함선과 예리한 대포)’로 상징되는 군함과 대포의 차이일 뿐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1879년 일본이 류큐왕국을 오키나와현으로 편입하자 다시금 해양 위기가 고조되었다. 청의 주적이 해국 일본임을 실감한 리홍장은 일본군함을 이기기 위해 신형 군함 구매에 나섰다.”고 밝혔다.

그런 사정으로 중국이 독일로부터 들여온 전투함이 진원호와 정원호였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얼핏 우리의 백두산호가 겹쳐지는 건 어쩐 일일까?

6·25 전쟁 발발 전날, 백두산호는 북한이 우리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보낸 북 수송선을 상대로 최초의 해상 전투를 벌여 격침시킨다. 바로 대한해협전투다. 그 수송선에 물경 북의 해군 및 지상군 600명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바다 영토를 지키려는 간절함으로 백두산호는 정부 지원금과 민간후원금으로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당시 우리 해군의 유일한 전투함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 때 백두산호가 아니었더라면?

조 교수는 “정원호와 진원호를 중심으로 몇 척의 순양함과 여러 척의 포선이 합쳐져 새로운 편제를 이루었다. 기존의 ‘북양수사’가 근대적 함대인 ‘북양해군’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로써 작전범위가 항구와 연해를 넘어 대양으로 나아갔다.”고 소개했다.

조 교수는 “북양함대를 대표하는 정원호와 진원호는 세계 해전사에도 길이 남은 황해해전에서 일본 연합함대를 맞이해 영웅적인 전투를 수행한 바 있었다.”면서, “청말 북양해군이 소유한 아시아 최대의 군함으로 과거 정화(鄭和)함대의 기함인 보선(寶船)의 영광을 잇는 배였다.”고 말했다.

일본의 공격을 받거나(정원호), 암초에 부딪혀(진원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중국 북양해군의 전설 정원호와 진원호의 부침, 이 장면은 중국에게 어떤 각성을 주었나?

조 교수는 “오늘날 중국해군이 랴오닝호나 산둥호 같은 항공모함을 연이어 건조하면서 해군강국을 외치는 데는 이런 비운의 역사를 만회하려는 간절함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일대일로와 관련해 ‘해양중국’을 구상하는 중국인에게 ‘신(新)’북양해군의 건설은 중국몽(中國夢)을 이루는 핵심 키워드일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오늘날 시진핑의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신(新)실크로드 전략을 말한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 一帶)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 一路)를 뜻한다. <부경투데이>

 

 

▶기사전문보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207.22022001567

 

다음 [해양문화의 명장면7] 조선통신사 마상재, 에도에 한류 열풍 일으키다
이전 [해양문화의 명장면 4편] 올라우스의 회상: 청어, 중세 한자동맹을 이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