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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4편] 올라우스의 회상: 청어, 중세 한자동맹을 이끌다
작성일 2018-01-25 조회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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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기 교수의 글이 게재된 국제신문 지면. ⓒ사진 이성재(홍보팀)

 

김문기 교수의 글도 흥미진진했다.

그의 글은 24일 국제신문 22면 전면 기사로 실렸는데, 480년쯤 전의 이야기였는데, 바다와 인간의 삶이 어떻게 얽혀있었는지, 아니 지금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느끼게 해준 ‘해양문화의 명장면’이었다.

이날 실린 김 교수의 글은 부경대학교 사학과와 국제신문이 공동 진행하는 기획시리즈 <해양문화의 명장면> 4번째 이야기였다. 제목은 ’발트해 가득 메웠던 청어, 중세 유럽 경제 지배하다

이 기사는 우리에게 두 명장면을 보여준다.

두 장면 모두 스웨덴의 울라우스 마그너스가 펴낸 해도(海圖)인 ‘카르타 마리나’(1539년)와 그의 저서인 ‘북방민족의 역사’(1555년)에 등장하는 것이다.

 

1. 해도(海圖)인 ‘카르타 마리나’가 보여주는 것은?

 

이 해도에 대해 김 교수는 “스칸디나비아에 산재하는 다양한 인종과 동물, 그리고 그 생활상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이 기사에서 그는 “이 지도의 제일 큰 매력은 바다에 있다. 노르웨이 서쪽 바다는 기기괴괴한 ‘괴물’로 가득 차 있다.”면서, “대항해시대 이후까지 두려움의 대명사였던 크라켄 등 헤아릴 수 없는 바다괴물이 등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바다에 대한 두려움, 정보의 부정확함은 해양생물을 과장하고 변형시켜 거대한 괴물로 만들었다. 르네상스가 도래했음에도 여전했던 중세적 상상력을 이 한 장의 지도는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해도의 서쪽과 동쪽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바다괴물은 모두 노르웨이 서쪽바다에만 출몰하지, 발트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미지(未知)’와 ‘기지(旣知)’의 차이가 괴물의 존재를 규정한 것이다.”고 전했다.

이를 480년 전의 일로만 여길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미지(未知)에 대한 두려움과 정보의 부정확함에 무수한 오류를 범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2. ‘북방민족의 역사’ 책에 나타난 청어 이야기

 

460년쯤 전에 출간된 이 책에 소개된, 아주 흥미로운 삽화 하나를 김 교수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바로 발트해 도시 스코네 어느 부두의 청어잡이 풍경이다. 청어가 어쨌기에?
김 교수가 기사에서 소개한 이 책의 한 구절을 읽어보자.

‘그것들은(청어) 엄청나게 몰려들어 바닷가에 스스로를 바치는데, 어부들의 그물을 찢어놓을 정도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떼로 몰려들 때는 도끼나 미늘창을 그 한 가운데 꽂으면 꼿꼿하게 서 있을 정도이다.’

이 청어가 당시 중세 유럽 경제를 지배했던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힘이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이 기사에서 “한자동맹은 발트해와 북해가 연결되는 뤼베크와 함부르크가 1241년 맺은 상업동맹의 발단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뤼베크를 ‘한자동맹의 여왕’, ‘영광중의 영광’으로 인도했던 것은 청어라는 이 물고기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 장면, 얼른 ‘부경대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바로 청어와 아주 닮은 정어리 말이다.

 

부경대 전신인 부산수산대학교의 설립을 이끈 ‘동력’이 정어리였다니! 

 

‘부산수산대학교 50년사’를 보자.

이 책은 정어리 어업의 발달로 수산업이 큰 활기를 띠었고, 수산업계의 재정적 후원이 가능해져 수대(水大) 설립이 본격화됐다고 기록한다.

동해안에 초대형 어군의 정어리가 처음 나타난 때는 1923년 10월24일. 처치 곤란일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었다고 한다. 정어리 대어군의 내유는 이듬해, 그 이듬해에도 계속됐다.

정어리가 얼마나 많았던지, 이 책은 ‘어군 위에 판자를 얹어 놓고 그 위에 사람이 올라서도 침하하지 않았다는 과장된 헛말이 떠돌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기록한다.

울라우스 마그너스가 앞에서 묘사한 ‘청어 떼 위에 도끼’의 장면과 유사하다.

1940년 당시 조선수산계의 열망은 수산고등교육기관 설립이었다.

정어리의 등장은 고등수산학교 경성설립기성회 설립으로 이어졌고, 수산업계 기금 350만원, 국비 17만5천원 등 367만5천원(현재 가치 75억원 상당)으로 부산수산대학교가 설립되었다.

부산에 설립되었지만 당시 청진, 원산, 전남, 인천 등 전국 각 도시의 대학 유치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이 역시 소중한 바다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의 국면을 보여주는 해양문화의 명장면! <부경투데이>

 

 

▶기사 전문보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124.22022009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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