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의 명장면 3편] 드레이크: '해적'이 기사 작위를 받다 | |||
작성일 | 2018-01-24 | 조회수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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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학생이 국제신문에 실린 박원용 교수의 기사를 읽고 있다.
16세기 영국이 ‘무적함대’ 스페인을 누르고 ‘대영제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키맨(keyman)’은 해적이었다? 아이러니한 이 역사의 장면을 조명한 부경대학교 박원용 교수(사학과)의 글이 지난 1월 17일 국제신문 22면에 크게 게재돼 관심을 받았다. 이 글은 부경대 사학과와 국제신문의 공동기획 시리즈 <해양문화의 명장면>의 3번째 기사다. 제목은 ‘현상금 걸린 해적대상, 대영제국 문을 열다’ 박원용 교수는 이 기사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에스파니아(스페인)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반출하는 금과 은을 잉글랜드 왕실의 권력 강화에 활용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잉글랜드 왕실의 해군력은 에스파니아의 최강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대항하기에는 너무나 허약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카리브 해에서 노예무역 사업을 하던 드레이크가 후발 국가였던 잉글랜드를 돕는 ‘키맨’으로 등장한다. 드레이크는 노예무역을 금지하던 스페인으로부터 크게 공격당한 뒤 복수를 결심하고, 스페인 선박들을 약탈해 영국 왕실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박 교수는 기사에서 “(스페인의)펠리페2세는 드레이크의 목에 2만 두카트, 현 화폐 가치로 수백만 달러 현상금을 내걸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엘리자베스는 1581년 4월, 드레이크의 골든 하인드 호에 승선하여 귀족 작위를 수여했다. 에스파니아의 시각에서 ‘해적’에 불과한 불한당이 잉글랜드의 상층 신분으로 격상되었으니 펠리페2세의 분노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해 보시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드레이크는 잉글랜드에서는 ‘국민 영웅’이었다. 새롭게 열린 해양 공간을 선점한 에스파니아를 국가의 공적 기구만으로 상대하기에는 잉글랜드의 힘이 모자랐다.”면서, “해양 진출의 후발 국가에 ‘해적’은 선두 국가를 따라잡을 여지를 제공했기 때문에 국가권력의 탄압 대상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부경투데이>
▶기사 전문보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117.22022005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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