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의 명장면 <39> 설탕 제국주의 : 해양공간의 교류가 만든 일상의 변화 | |||
작성일 | 2019-07-05 | 조회수 |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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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학생이 국제신문 지면을 보고 있다. ⓒ사진 이성재(홍보팀) 부경대학교 사학과?국제신문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의 39번째 이야기 는 설탕이 소재였다. 11월 14일 국제신문 20면에 실린 부경대 박원용 교수(사학과)의 글 ‘설탕 제국주의 : 해양공간의 교류가 만든 일상의 변화’가 그것이다. 박 교수는 이 글에서 해양공간의 물자교류가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했지만 그 이면에 많은 사람들은 생존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감내해야만했다고 했다. 그 극명한 사례가 ‘설탕’이라는 것. 그는 “지중해 지역을 중심으로 설탕이 유럽인에게 조금씩 알려지긴 했지만 설탕은 육두구, 정향, 후추 등 아시아 향신료에 버금가는 고가의 산물이었다. 설탕은 상층 귀족계급만 즐길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면서, “특권계층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사치품에서 대중적 소비재로 설탕이 전환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전기가 필요했는데 유럽인의 해양 진출이 바로 그것.”이라고 소개했다. 박 교수는 “인도나 중국에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항로를 찾는 과정에서 유럽의 항해세력들은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의 카나리아 제도와 마데이라섬을 차지했다. (중략) 설탕 생산을 위한 사탕수수 경작은 자원 수탈 만에 의존하는 이익 창출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남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노동력뿐 아니라 아프리카 노예 노동력까지 활용한 브라질의 설탕 플랜테이션은 이제 설탕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1630년, 포르투갈로부터 페르남부코를 획득한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의 투자로 브라질 동북부의 설탕 생산은 더욱 늘었다.”고 밝혔다. 그는 “드락스는 아프리카의 흑인노예들을 수입해 설탕 생산에 필요한 지속적 노동력을 확보해나갔다.”면서, “드락스의 노예노동에 기반한 설탕 생산은 카리브해 다른 섬들에서도 전형적 형태로 확립돼 갔고 노예들의 후손은 자기 뿌리를 단절당한 채 디아스포라의 삶을 이어가야 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8세기 들어 카리브해의 설탕 플랜테이션 대부분은 영국과 프랑스 수중에 들어갔다.”면서, “유럽의 두 강대국이 카리브해의 설탕 플랜테이션을 지배하면서 설탕은 이제 상층계급만을 위한 소비재가 아니었다. 아프리카 노예노동력을 기반으로 대량 생산체제에 들어가면서 설탕은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소비재가 되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단맛’을 부담 없이 누릴 수 있었던 영국 공장 노동자들의 형성 이면에는 그러한 ‘단맛’을 끊임없이 제공하기 위해 가혹한 노동조건에 시달려야 했던 흑인 노예들이 있었다.”면서, “‘설탕 권력’은 그것을 보유하지 못한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원주민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힘이 원천이었다.”고 밝혔다. <부경투데이>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1114.22020004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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