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의 명장면 <33> 마데이라 와인과 미국혁명 | |||
작성일 | 2019-07-05 | 조회수 |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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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앞에 소개하게 된, 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의 소재가 와인이다. 마데이라 와인이다. 지난 19일 국제신문 21면에 소개된 이 시리즈의 33회째 이야기 제목은 ‘마데이라 와인과 미국혁명’이었다. 필자는 부경대 박원용 교수(사학과)였다. 이 특별한 와인에는 어떤 해양문화의 명장면이 들어있을까? 우선 마데이라라는 어떤 곳인지 들어보자. 박 교수는 이 글에서 “포르투갈의 항해 왕자 엔히크가 대서양 진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포르투갈령으로 귀속된 마데이라섬이 있다.”면서, “아프리카 대륙에서 약 520㎞, 포르투갈에서 약 1000㎞ 떨어진 마데이라섬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그곳은 대서양과 아프리카 서해안으로 포르투갈이 진출하는 데 교두보로 활용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마데이라섬은 축구 영웅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출생지로도 유명하다. 박 교수는 “마데이라섬을 더 넓은 역사 맥락에서 보면, 현시대 영웅 호날두뿐 아니라 포르투갈 해양 진출의 교두보로서 역할 또한 뛰어넘는 더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데이라 식민사업을 시작한 초기부터 엔히크 왕자는 크레타섬에서 포도나무 종자를 들여와 와인을 식민 이주자들에게 제공하려 했다.”면서, “인도양에 진출하려는 유럽 해상세력이 늘수록 마데이라는 중간 기착지로서 중요성이 더해갔다. 장기간 항해를 앞둔 선원들에게 마데이라 와인은 막막한 대양 위의 무료함을 달랠 수단 중 하나였다. 인도양으로 떠나는 상선의 중요 적재물로 실리면서 마데이라 와인 소비는 늘었다.”고 했다. 마데이라 와인에는 어떤 특별함을 있을까? 박 교수는 “마데이라 와인의 소비가 늘어나는 과정에 해결해야 될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장시간 항해와 높은 온도에 노출된 마데이라 와인이 항해 도중 상해버리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와인 생산업자들은 사탕수수를 재료로 만든 증류 알콜을 마데이라 와인에 혼합하면 와인의 알코올 성분을 강화하면서 와인의 부패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마데이라의 주정 강화 와인은 인도양으로 떠나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박들에 인기 품목이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런데 사탕수수로 만든 증류 알코올 첨가가 와인의 독특한 맛을 변질시키는 또 다른 문제를 발견한 와인 생산업자들은 18세기 중반부터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만 마데이라 와인에 첨가하도록 해 유럽에서 생산되는 와인보다 도수가 높고 풍미가 독특한 와인을 생산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18세기 마데이라 와인의 전성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고 소개했다. 이 와인이 어떤 흥미로운 해양문화의 명장면을 연출했을까? 박 교수는 “존 핸콕 같은 매사추세츠의 부유한 상인은 마데이라 와인의 인기를 활용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자 했다. (중략) 1768년 5월 9일, 핸콕의 범선 리버티호가 마데이라 와인을 싣고 보스턴에 들어왔다. (중략) 보스턴 세관원들은 핸콕이 관세를 피하려고 야밤에 상당한 양의 마데이라 와인을 하역했다고 의심했다. 영국 정부는 전함 롬니를 파견해 리버티호를 압류하는 강수를 두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국 정부의 이런 행동은 (식민지 거주민들의) 불만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들의 불만은 1769년 영국 해군에 편입돼 로드아일랜드 뉴포트 항에 억류돼 있던 리버티호에 대한 방화, 1770년 보스턴 학살사건, 1773년 보스턴 차 사건(티파티 사건)으로 이어졌다. 바야흐로 미국혁명의 본격적인 불꽃이 타오르는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마데이라 와인이 갖는 이런 상징성 때문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뒤 축배 와인으로 마데이라 와인을 사용했다.”면서,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자국 이익 증진을 위해 식민지에 소개한 마데이라 와인이 결국 그들의 식민 지배를 끝내는 순간의 상징물로 부각된 것이다.”고 소개했다. <부경투데이>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919.220210067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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