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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32> 조선에서 일본 지도 ‘양극화’ 가 의미한 것은?
작성일 2019-07-05 조회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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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우 교수의 글이 게재된 국제신문 지면.

부경대학교 이근우 교수(사학과)는 “지도를 통해 우리는 조선 전기의 일본 인식을 읽어낼 수 있다.”면서, “새로운 일본 지도에 대해서 조선 정부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난 12일 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공동기획 <해양문화의 명장면> 32회째 이야기 ‘통신사가 가져온 에도시대 지도 … 일본의 변화 알리는 상징이었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이 교수는 “에도시대 들어 일본 국내 정세가 안정되면서, 비로소 전국의 지리정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측량기술도 발전하였다.”면서, “에도막부가 작성한 정밀한 지도는 기밀이었으나, 일본 열도의 전체 윤곽과 기본 정보를 담은 지도는 민간에 공개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그 중 조선에 전해진 것은 석천류선이 그린 지도와 마연자고암이 그린 지도였다고 한다.

그는 “윤두서는 ‘일본여도’라는 지도를 남겼는데, 이 지도는 석천류선의 그림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중략) 1711년에 조태억을 정사로 한 통신사가 가져온 지도를 윤두서가 입수해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마연자고암이 그린 지도를 가져온 것은 영조 39년(1673)에 파견된 조엄을 정사로 한 통신사였다.”고 했다.

그는 “이 통신사 일행은 특별히 풍부한 기록을 남겼다.”면서, “원중거의 ‘화국지’에는 여러 장 일본 지도가 실려 있고, (중략)  규슈의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길게 이어진 도로를 따라서 수십 개 지명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다. 이 길은 북규슈의 고쿠라에서 규슈 서쪽 나가사키로 이어지는 나가사키 가도이다. 당시 동아시아 해상교역의 중심지가 된 나가사키에 이르는 도로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처럼 조선통신사는 바닷길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 외국의 정보를 가져온 메신저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화국지’는 원중거라는 중급 관인이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편찬한 책이다. (중략) 그의 책 속에는 당시로서는 조선에서 가장 정밀한 일본지도가 실려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통신사 일행이 입수한 일본 지도는 당연히 국가 차원의 중요한 정보로 규장각과 같은 국가기관에 소장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일본 지도를 중심으로 보면, 일부 서얼 출신의 지식인들이 일본 지도로 상징되는 일본의 변화에 관심을 가졌으나, 국가 전체로 보면 그 관심은 대단히 미약한 것이었다. 동시에 1763년 이후 조선은 더 이상 일본 본토에 사신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본에 대한 정보는 단절되었다.”고 밝혔다. <부경투데이>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80912.220200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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